20분 거리 안의 행복 헤아리기

행복은 멀리가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가까이’의 실제적 거리는 얼마나 되는 걸까요? 그 거리는 눈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닌 마음의 거리를 말하기에 수치로 표현키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겠지요. 행복이나 마음은 추상명사로서 수치로 말하기보다 느낌으로 말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행복을 추상적인 것으로만 말하기보다 실제의 현실로 우리 피부에 와 닿게 표현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행복은 20분 거리 안에 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마음의 행복에 비한다면 먼 것 같지만 또 이만큼 가까운 것도 없습니다. 내 행복의 요소들이 내 행동반경의 20분 거리 안에 있습니다. 행복도 생각과 마음으로만 느끼고 말하기보다 실제 쓰다듬고 만질 수 있는 행복이어야 더 좋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내 행복의 요소는 가족들입니다. 출가한 두 아들 사이에서 다섯 명의 손주들이 있는데, 요 녀석들은 내게 행복덩어리입니다. 나는 이 녀석들을 생각만 해도 즐겁고 행복하지만 녀석들이 보고 싶고 쓰다듬으며 만지고 싶을 때는 20분 안에 달려가 녀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녀석들은 모두 내 집에서 20분 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는 화해와 소통이고, 이를 돕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알아가고 대화를 통해 화해와 소통의 장을 펼쳐갑니다. 그러나 이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서로 간에 공통분모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대화는 동문서답이 되고 마니까요. 현대인들에겐 가족 안에서마저 대화의 절실함을 깨닫지만 가족임에도 대화가 어렵게 생각되는 것은 서로에게서 대화의 공통분모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에서는 세대차가 극심하여 서로의 일치점을 찾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합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핏줄이라는 생물학적 본능 이외의 그 어떤 만족감도 행복감도 없기 마련입니다.

나는 2년 전 담임하던 교회를 은퇴한 원로 목사이고, 내 두 아들 역시 목사로서 내 집에서 20분 거리 안에 있는 교회를 형제가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서로가 가까운 곳에 있으니 자주 만날 수 있고, 또 하는 일이 같은 목회 사역이니 부자지간이나 형제지간이나 항상 공통분모의 대화가 이루어져 서로를 잘 이해하며 그러기에 우리 3부자가 만나면 언제나 풍성한 대화가 넘쳐나 행복을 느낍니다.

나는 내가 예전 30여 년을 섬겼던 교회에서 원로 목사지만 이제는 은퇴하였기에 평신도의 입장에서 예배자로서의 기쁨을 누리는데, 주일마다 찾아가는 정든 교회 역시 내 집에서 20분 거리 안에 있습니다. 내 후임으로 교회의 책임자가 된 새로운 담임목사님은 내 큰아들과 동갑내기인데 친 아버지 이상으로 얼마나 극진하게 나를 섬겨주는지 가난한 교회라 물려 준 것도 없는 처지에서 그저 미안한 마음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믿음의 가족인 온 교우들 역시 20분 거리 안에서 나와 아름다운 관계의 정들을 나누며 평안을 누리고 살아가니 이 또한 감사하며 행복한 일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드리는 나의 첫 감사기도는 “오늘도 새 날을 허락해주시고, 아름다운 세상을 주셨으며,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이웃들을 가까이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시작됩니다. 나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 외곽지역 변방에서 수십 년을 살다보니 지인들의 인맥도 두터워져 제2의 고향처럼 여겨집니다. 내가 만나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역시 대개 20분 거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서 만나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래서 더욱 친밀한 사람들입니다.

어제는 주일 예배를 마치고 1주일에 2번 방문하게 되는 노인요양원에서 예배인도를 하였습니다. 거의 80 후반의 고령이신 할머니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원들 외에는 외부사람을 접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매불망 나를 애인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쪼글쪼글한 얼굴들이 내겐 한없이 귀엽기만 한 어린아이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들에게서 삶의 겸허함을 배웁니다. 이들 역시 20분 거리 안에 있습니다.

오늘 내가 오랫동안 그리고 깊숙이 관여해온 지역의 복지관에서 어려운 소외계층의 이웃 주민들을 위해 도시락배달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복지관도 그리고 1주일 3번 도시락배달을 받게 되는 이용대상자들도 모두 20분 안팎 거리에 있어 내가 돌아보아야 할 돌봄의 필요가 요구될 때에는 출동대기조처럼 20분 안으로 즉각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가족과는 달리 작게나마 내 봉사를 통해 기쁨을 얻는 이들이지만 도시락을 받아들고 소풍날의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는 모습에서 나는 또 다른 보람의 행복을 얻습니다.

20분 거리 안에서 헤아려보는 행복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리의 몸이 멀어져 가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마음이 중요한 만큼 몸의 관계 역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만나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서로의 볼을 부비며 내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수 천 마디의 말을 하는 것보다 더욱 실제적이고 오랫동안 기억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만큼 나는 20분 거리 안의 행복을 더욱 누리며 감사할 것입니다. 10분 거리로 우리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실로 행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어 만지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조규남 칼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