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설렘과 기대감으로 기다리며

지금 우리는 우리 세대에 가장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암울했던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모든 만남들이 제한되면서 마음의 문들도 닫혀지고 미래마저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않은 불확실한 역사 위에 우리의 현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꾸준히 돌아 2020년의 마지막을 향하여 달려가고,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2020번째 맞는 크리스마스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내 지나온 인생에, 아니 나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지금도 가장 남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작은 시골 교회에서 맞게 되는 성탄절일 것입니다. 이제 노인이 되었어도 어린 시절 맞이했던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생각할수록 동심의 세계로 날아가게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첫 눈을 기다리게 합니다. 아~ 얼마나 아름답고 그리운 시절이던가요? 그 때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맞이할 수는 없을까요? 가장 바라기는 어릴적 내가 경험했던 설렘과 기대감의 성탄절 분위기를 우리 아이들도 같은 마음으로 느끼고 기뻐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크리스마스는 어린 동심의 세계에서 깊게 체험되기 때문에 성탄절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모두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 불필요한 비본질적 논쟁들을 그쳐야 합니다. 어떤 이는 지금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성탄절이 역사적으로 12월 25일이 아님을 주장합니다. 나는 그 때마다 어긋장난 말로 이렇게 반박합니다. “아니, 12월 25일이 진짜 성탄절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어떻게 알아? 2천 년 전 베들레헴에 갔다 와봤어? 역사학자 누구라도 그걸 어떻게 알겠냐고? 그리고 무엇보다 성탄절 날자가 뭐 그리 중요해? 12월 25일이건 7월 25일이건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예전 어떤 이단종파에 있는 분과 대화를 하던 중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세 개의 못이 아니라 두 개의 못에 못박혀 죽으심을 입에 게거품을 물고 역설했습니다. 예수님은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려 못박힌 십자가 형틀이 아니라 하나의 원통형 니무에 매달려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도 나는 그의 의견을 묵살했습니다. “보세요~ 그 당시 골고다 언덕에 직접 가봤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못박은 것이 두 개의 못이건 또는 세 개의 못이건 그게 왜 그리 중요합니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그분이 진정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구원자이신가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마치 예수가 세 개의 못에 처형당하면 우리의 구세주가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벌써 크리스마스 시즌인 12월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디서건 크리스마스 캐럴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리를 왕래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져서이겠으나 도통 거리가 조용합니다. 백화점 앞을 지날 때 어깨가 들썩거리던 크리스마스 캐럴들을 들은지 오래입니다. 아직은 좀 이른 셈인가요? 그래도 교회이건 백화점이건 어디에서나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기 원합니다. 예수도 안 믿는 사람들이 괜히 장삿속으로 손님을 끌기 위해 크리스마스 캐럴을 울리는 것은 상업적 요소라 문제가 많으니 끌려다니면 안 된다구요?

제길헐! 도대체 왜 그리 따지는 게 많습니까?! 우리는 저들이 우리가 사용하는 기독교문화에 접목되기 바랍니다. 어차피 세상은 믿는 이보다 안 믿는 이들이 많고 힘도 더 있는데 저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좋아하여 의미가 있건 없건 덩달아 따라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외친다면 좋은 현상 아닌가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참으로 하나 외모로 하나 그리스도가 전파되면 좋은 것이라는 나의 실용적 기독교관이 문제인가요?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가 주의 오심을 외치지 않으면 저 길가의 돌들이 소리지를텐데 말입니다.

싼타크로스 할아버지는 가짜이니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어 현혹되지 말게 하고, 또 싼타크로스가 중심이 된 성탄절이 되지 않도록, 말 구유에 태어난 아기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교육하는 일이 이 성탄절에 가장 중요한 건가요? 눈 썰매를 타고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 보따리를 풀고 가신다는 싼타 할아버지의 존재가 아이들에게 진짜로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기독교 교육에 큰 문제점이 되는 겁니까? 미리 진실게임을 하지 않아도 조금만 더 크면 자연스레 다 알게 될 것을 뭐 그리 중요하고 급해 아이들의 설렘과 기대감을 애써 미리 무너뜨릴 게 있냐 이겁니다.

2020년 크리스마스는 코로나 브루(Corona blue)로 인해 브루 크리스마스(Blue Christmas)가 될 것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그토록 기대감의 충만으로 설레며 기다려지게 됩니다. 모든 상황이 가장 어려운 이 때야말로 인간적 모든 욕망과 허영심이 배제된 저 낮고 낮은 곳에서 슬픔에 싸여 있는 나를 구원해 줄 메시야 아기 예수를 기다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서야 2천 년 전 그 어린 예수의 낮아짐과 비천함 그리고 인간의 땅에 오신 하나님의 고독을 알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금년 크리스마스는 여느 때와 달리 구하고 바라는 게 많습니다. 솔직히 최근엔 모든 명절이 그러하듯이 성탄절마저도 큰 기대감 없이 연례행사처럼 지내곤 했습니다. 구하고 바랄 게 별로 없었거든요. 배부른 흥정만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금년 크리스마스는 다릅니다. 예수님께 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내 이 기도를 들어주시기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고 믿고 싶으까요, 이런 기대감이 있어서인지 올해 2020년의 크리스마스는 큰 은혜가 넘치는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되리라는 묘한 기대감과 설레임이 있습니다. 역설적입니다.

세상이 가장 어려운 때에 주님은 이 땅에 찾아오셔서 고난 속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시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 메시야입니다. 지금 가장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생각될수록 내 삶의 현장에 주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낮은 곳에서 마굿간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께 나아가 나의 보화를 드려야 할 때입니다. 질그릇 속에 감추어진 고난의 보화를-.

조규남칼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