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주의 자크 루이 다비드

어릴 적 우리에겐 책받침이 꼭 필요했다. 연필심이 흐리고 딱딱해 책받침을 받쳐야만 했었다. 누구나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책받침 그림에 나풀레옹이 있다. 서양미술이나 서양미술사를 몰라도 나폴레옹의 그림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면서 말 갈기와 망토가 날리는 모습, 옹장함과 용맹스러움으로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으로 흠모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때 화창한날 노새를 타고 넘었다고 하니 사실을 왜곡한 그림임엔 틀림이 없으나 그 그림으로 우리는 ‘나폴레옹처럼’이란 꿈을 꾸었다. 이렇게 멋진 나폴레옹을 그린 화가가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35)는 19세기의 예술적, 정치적으로 최고의 권력으로 화단에 영향을 끼쳤으며 프랑스의 역사를 화폭에 담은 역사 화가이다.

당시 프랑스화단에서는 바로크와 로코코 미술의 화려하고 관능적인 미술에 식상하여 그리스 로마미술에 대한 전통미술을 동경하고 그 뿌리를 끄집어 내어 전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것이 고전주의인 것이다. 그 고전주의 대표화가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를 단두대에 보내면서 나폴레옹의 공식적인 궁정화가가 되었다.

나폴레옹의 초상화로 부와 명성을 얻은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35)의 자화상이다. <자크 루이 자화상 1794년> 다비드의 자화상은 자코뱅당원으로 혁명에 가담하여 혁명정부가 바뀌므로 감옥에서의 46세 때 모습이다. 곱슬머리와 넓은 이마, 총명하리 만큼 밝은 눈, 그러나 그 눈은 불안하게 관찰자를 바라보고 있다.

다비드의 얼굴이 왜 일그러져 있을까? 다비드는 몸집이 큰 청년이었고, 펜싱을 잘하는 건장한 청년으로 펜싱 경기 때 입은 얼굴의 상처가 종기로 전이되면서 회복하기 어려운 얼굴로 변형 되었다고 한다. 일그러진 얼굴은 어둡게 처리하므로 상처를 감추려하고 하였나? 46세의 다비드는 멋진 20대로 보인다.

20대로 그려진 다비드의 자화상은 고전주의의 극사실적인 그림으로 엄격하고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빠렛드와 붓을 힘 있게 웅켜 잡은 손가락은 내가 혁명가가 아닌 화가임을 말하고, 심리적인 내면적 깊이와 외면적인 저항의식을 정확하게 표현하므로 현실을 불끈 쥐고 생생한 삶에 대항하듯 예리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다비드는 단순한 고전주의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되며 화려함을 뺀 엄숙함과 정중하며 엄격함으로 신고전주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프랑스역사의 현실적인 목격자로서 정치적이었고, 다체로운 활동으로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은 루이16세 화가에서 혁명정부의 화가, 나폴레옹화가로 그 입지가 바꿔지는 살 얼음장 같은 인생행로로 프랑스의 역사를 자신의 삶을 통해 화폭에 담아냈다.

이와 같은 시대의 18~19세기의 스페인 화가 고야가 생각이 난다. 그도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갈등,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갈등에 대한 내면적 회유와 변화를 그림 속에 넣었듯이 자크 루이도 고야와 다를 바가 없다.

예술가이면서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다비드는 프랑스 역사를 화폭에 담았다. 다분히 정치적인 다비드는 경제적으로 부를 자졌지만 나폴레옹 정권이 무너지면서 브뤼셀로 망명을 가 다시는 파리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화가로서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행복감을 줄 수 있는 화가가 정치적으로 관계를 유지 할 때 화폭에 담은 작품들은 순수함을 잃고 왜곡된 사실만을 보여줄 뿐이다. 다비드는 프랑스의 최고의 고전주의 대표화가이고, 왕립미술 아카데미의 최고의 역사화가, 예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최대 권력자로서 프랑스 화단에 영향을 준 그 시대의 화가이다.

베로니카 유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