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프랑수아 밀레의 자화상

밀레의 만종을 보고 있으면 먼 기억 어렸을 때 남동생의 머리를 깍아주기 위해 이발소에 손을 잡고 들어가던 기억이 난다. 그 허름한 이발소는 그래도 모양을 내기 위해 큰 거울위에 밀레의 ‘만종’ 복사판 그림이 붙어 있었다. 그때는 그 그림이 누구 것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눈에 익어 좋은 그림이었고 유행처럼 상점마다 하나씩 벽에 붙였던 그림인 것 같다.

두 부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그날 먹을 감자 바구니를 앞에 놓고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다. 저녁노을은 하늘을 붉게 덮고, 붉은 색은 부부의 어깨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순수한 전원생활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노동으로 얻은 기쁨의 양식. 삶의 진실을 전해주고 있는 밀레의 만종은 그 시대나 지금이나 노동의 진실은 어느 형태이건에 변함이 없다.

장 프랑수아 밀레는 19세기중엽 프랑스 파리의 바르비종파의 대표화가이다. 바르비종파는 도시의 산업화로 자연을 찾아 바르비종의 작은 마을로 모여 그림을 그린 풍경화가들의 집단이다. 장엄하고 순수한 자연의 모습은 로맨틱한 감정과 서정적인 모습으로 화가들에게 자연 속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자연은 그리스역사나 유적지, 신화나 성서의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풍경만을 인정받았으므로 바르바종파의 독립적인 풍경화는 저급한 장르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가들이 인문하는 살롱에서 인정받지 못해 십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서야 입문할 수 있었다.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밀레는 어려서부터 고전과 전통미술을 바탕으로 농촌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주로 그렸는데 그 그림들은 프랑스 혁명 이후의 사회적 변화에 따른 농촌의 농부의 삶에 대한 고난과 연민이 살아있는 고전주의적이며 사실주의적인 그림이었다.

밀레의 그림 속에 나온 농부들은 밀레와 잘 아는가? 화가와 조금이라도 낯익은 얼굴이 화가의 그림에 주인공이 되었다는데 밀레의 모델들은 친분이 없다고 한다. 농촌풍경과 농민들을 즐겨 그렸을 뿐 그가 누구인지 모른단다.

밀레는 농민화가이며 풍속화가라고 한다. 가난과 질병으로 평생을 살면서 자연을 향한 깊은 철학으로 농민 생활을 즐겨 그린 농민화가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60세에 세상을 마감했다.

고요함과 경건함,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꾸밈없는 자연의 소박한 농촌풍경을 즐겨 그린 밀레. 초조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자화상은 왠지 농촌풍경을 즐겨 그렸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현실도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같은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나? (1840년의 자화상은 밀레가 바르비종파에 들어가기 전의 자화상이다)

맑고 총명하리 만큼 번뜻거리는 눈망울은 매우 차가운 도시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반듯한 이마에 날렵한 콧날은 이지적이며 현실적이고 차분함과 자존심이 강한 남자로 보인다. 차분하게 가른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은 이타심과 인내심으로 청순함도 보여지고 있는 밀레의 4점 중 하나의 자화상. 휘둥그레한 눈이 힘들고 지친 자신의 삶을 이야기라도 하듯 눈동자를 굴리며 관찰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약간 벌어진 입술은 말을 머금은 듯, 그러나 금방이라도 말문이 터질 것 같은 모습, 방금 일을 끝낸 그 열기로 얼굴에 붉은 기운도 있는 것이 검은 외투로 더욱더 확실한 얼굴에 시선을 머물게 한다. 바탕의 어두운 배경은 고전적 배경으로 인물을 확실하게 부각시키는 것이 어렸을 때 고전과 전통미술에 익숙한 사실주의 그림으로 자기의 감정을 작품 속에 담는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삶의 고단함을 애써 감추려고 하는 불안스러운 모습은 안정적이지 못한 삶의 초조함 때문인가. 밀레는 경제적으로 아주 가난했을 때 첫 번째 아내가 죽어갔다 한다. 죽어간 첫 번째 아내에게 연민이 생긴다. 밀레의 두 번째 아내는 9명의 자녀를 얻었다하니 그들의 자연같은 사랑, 그들의 일상, 가난속의 삶의 극박함 속에서도 부부의 사랑은 깊었나 보다.

오늘도 밀레의 만종과 자비심, 이삭줍기의 3대 걸작품을 보고 있다. 따뜻하고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우리에게 다정다감하게 다가온 밀레의 우수에 찬 작품에서 자연을 즐기고 있다.

서양화가 베로니카 유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