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것들

제가 어린 시절 어느 날 송아지가 태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어난 송아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어미의 젖을 찾아서 그것을 입과 머리로 들이 받으면서 빨았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송아지에게 가르쳐 준적이 없는데 어떻게 송아지가 그것을 알고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것을 본능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존의 본능은 참으로 신비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본능 외에는 보거나, 듣거나, 경험하지 않고는 거의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쩌면 아는 것과 그 아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요?

생명체는 본능을 따라 생존합니다. 사람 역시 본능을 따라 생존하면서 동시에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지요. 그리고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생을 바칩니다.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면 일시적인 행복을 만끽한 후에 또 다른 욕망을 쫓아 도전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끊임없이 욕망을 따라 살다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배로 다닌다.”(창3:14)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욕망의 핵심은 바로 ‘자기’입니다. 자기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대접받고, 사랑받기 위한 욕망일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타인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 역시 성경에 “흙을 먹는다.”(창3:14)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흙)들을 통해서 욕망(배)을 추구하기 때문에 “배로 다니고 흙을 먹는다.”는 성경의 기록은 정확한 것이지요. 그래서 알려고 하고, 또 그 알고 있는 것들을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의 생을 마치는 시간까지 그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본능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들었거나, 보았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몸에 세포 하나도 전문가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모두인 것처럼 믿고 살아갑니다.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알고 믿느냐에 따라서 그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사주팔자나 운명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지금의 선택에 의해서 미래를 살아갑니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자신이 그것을 믿을 때에 선택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다 모아 공유한다 할지라도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므로 불완전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과 영적존재 중에 실패와 실수를 경험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생명체와 자연의 세계는 오차나 오류가 없습니다. 우주공간과 우주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절로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작은 지식과 경험의 상자 안에서 벗어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칼럼위원 김수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