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들의 전쟁 (The wars of idols)

세상은 우상들이 필요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죽음에 대한 미지의 공포 때문이든 그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부터이든 사람들은 우상을 필요로 했다. 출애굽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에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의지하게 되었다. 금송아지가 우상인 줄 모르고 그랬을까?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들로서의 자신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금송아지를 어떻게 신으로 떠받들 수 있을까.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에 투영하여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가장 분노케 한 죄악이었다. 하나님과 우상을 구별하지 않고 일원화 시켜 ‘하나님 됨’을 왜곡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하나님답지 않게 만든 것처럼 하나님의 자존심을 건드린 게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니 없다고 하고 그냥 눈에 보이는 우상 그 자체를 섬기든지 할 것이지…

삶이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의지할 것을 찾는다. 그런데 가난한 역경 속에서 우상이 만들어지기보다 오히려 풍요로운 시대에 사람들은 자만심으로 말미암아 목표와 방향을 잃고 더욱 피폐해진 정신상태에서 아무것도 건질 게 없는 허무의 늪을 허우적거리며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우상들을 만들어냈다. 이제 더 이상 나 이외에 믿을 게 없다는 사회적 불신감이 팽배해질수록 마음의 공허를 채워 줄 우상의 출현은 절실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염원대로 한 둘씩 우상들이 세워졌다. 마치 하나님의 신정 정치를 외면하고 스스로 사람의 노예가 되기를 원해 사울 왕을 세운 이스라엘처럼.

한 때 일본에서 한국 배우 배용준이 신처럼 떠받들려져 급기야 신과 같은 존재의 ‘욘사마’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일본 사회가 얼마나 타락하고 피폐했었는지를 반증하는 것과도 같았다. 전후 패망국의 설움을 딛고 다시 경제 회생의 재기를 노린 일본이 세계에서 외화 보유국 1인자로 자리잡자 사회는 극도의 자유방종으로 성적 무질서가 사회분위기를 휩쓸었고 순수시대를 상실했다. 이에 권위주의적 남성들과 달리 강요된 순종으로 억압돼 있던 여성들 안에 그 옛날 애틋한 연정의 추억들이 새롭게 솟아나기 시작했고, 이 시점에 순수한 순애보의 연인들 사랑을 다룬 한국 드라마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이에따라 드라마의 주인공이 우상화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한국 사회도 일본처럼 경제 성장이 상승하면서 그만큼 사람들에게 문화적 욕구도 강해졌다. 그러나 문화적 여건은 너무 미흡해 그나마 어른들 사이에서 삶의 애환을 노래한 이른바 ‘뽕짝’이 한국 가요계의 대표가 되었으나 청소년들을 비롯한 젊은층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는 없었다. 그러다 1992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랩(rap) 음악으로 청소년들의 사회적 불만을 토로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세상에 선을 보이며 청소년들의 신세대 우상으로 떠올랐다. 이후 이 시점을 기해 어른들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의 댄스뮤직과 현란하고 격렬한 춤동작이 가요문화계의 주류를 이루게 됐다.

바야흐로 수많은 댄스 그룹들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TV화면을 장식하고 끝없이 뜨고지는 별들의 각축전 속에서 누가 선점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아이돌이 태어났고, 이에 이른바 우상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제 세상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 가사와 정신빠지게 흔들어대는 춤동작의 세상 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점차 어른들은 TV를 외면하게 되었다. 대신 이들은 급변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자신의 삶들과 직결된 뉴스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뉴스를 만들어내는 언론은 국민을 위해서라기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방송사들마다 시청율 경쟁으로 국민들이 접하고 싶지 않은 수많은 부정적 보도 자료를 방출했고 국민들은 사회 현상의 이면들을 알아가면서 상한 심령이 되어갔다. 사회 그 누구도 자신들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이때 귀에 익은 그 예전의 ‘뽕짝’노래가 ‘트롯트(tort)’란 이름으로 TV화면에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스 트롯’을 비롯하여 ‘미스터 트롯’으로 급기야 트롯 전성시대가 되었다.

어른들은 트롯에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열광했다. 이제야말로 자신의 고향을 되찾은 심정으로 트롯 열풍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과정에서 BTS 등의 몇몇 젊은이들 대상의 K-Pop그룹들은 해외에서의 활동들 이외에 국내에서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국내에서는 트롯이 대세이고 영웅이 되었으며, 이 대세에 편승하지 못하는 한 변두리 연예인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한국 연예계의 현실이다.

이제 다시 문제가 생겼다. 아직도 K-Pop이 세계적으로 건재하지만 트롯 열풍에 빠진 국내에서는 청소년들의 우상들이 사라져 이들의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또 다시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이들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아이돌이 탄생할까? 그럴 것이다. 우상은 인간의 욕구충족 필요에 따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그리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우상들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니까. 그것이 인간의 역사이니까.

종교는 인간 욕망의 투영이며 소외의 한 형태라는 주장과 함께 영혼불멸성을 부정함으로써 유물론적 관점에서 칼 막스(K. Marx)를 통해 ‘공산당 선언’을 발표케 한 포이에르바하(Feuerbach)로부터 시작해서 진화론에 근거를 두고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이들의 주장들처럼 ‘인간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낸 신’으로 마치 인간들과 패권싸움을 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우상 중의 한 존재처럼 그렇게 묵묵히 지내오셨다.

우상들의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인간세계의 현실을 하나님은 언제까지 침묵으로 일관하실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교회를 통해 영적 전쟁을 준비케 하실 것인가… 도시에 우상들의 동상이 우뚝 설수록 하나님의 때는 가까워져 있음을 안다. 그 우상들의 자리 위에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십자가가 들어서기까지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연합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실 것이다. 그것이 말세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니까.

칼럼위원 조규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