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드 라투르의 자화상

조루즈 드 라투르는 17세기의 바로크시대의 프랑스출신 종교 화가이다. 라투르는 제빵사의 아들로 태어나 회계사의 딸과 결혼하여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였다.

아내의 고향 뤼네빌에서 공방을 세워 공방이 번창하므로 토지소유와 경제적 부를 가졌으나, 10여년의 전쟁을 피해 파리로 이주하면서 루이13세의 사랑을 받고 라투르경이라 칭하는 궁정화가로 부를 누리고 소작인들을 다루며 살았다.

라투르는 파리를 떠나 다시 뤼네빌로 돌아왔으나 유행성 출혈로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 후 같은 병으로 죽음을 맞이한 조르주 드 라투르경. 세상은 악덕 고리대금업자로 하인들에게 악행을 일삼고 사람들에게 민심을 잃은 라투르를 서둘러 역사 속으로 잠재워 버렸다.

라투르의 그림을 보면 악독한 행동을 일삼았다고는 생각되어지지 않지만 라투르 작품속에 숭고한 장면부터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하니 그의 일상이 그림과 전혀 다르다고는 짐작할 수 없을 것 같다.

라투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둠과 빛에 의해 극사실적인 묘사에 빠져 드는 것 같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지경이라니. 이렇게 표현능력이 뛰어날 수 있을까 마치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는 듯 비슷하기도 하고….

라투르는 촛불장면의 대가라고 한다.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관찰에 의한 세부묘사가 빛에 의해 더욱더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며, 빛을 이용한 절제되고 대담한 색의 표현은 라투르를 빛의 대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

라투르는 빛에 의한 명암대비가 확실한 낮 장면과 밤 장면으로 그림을 구별하며 빛에 의해 인물이 세련되고 신비롭고 주제의 정적인 것에 관람자를 몰입하게 만들어 그림 속 내면의 심오한 깊이를 느끼게 한다.

사물의 입체적인 공간 구성력과 능숙한 빛 처리에 의해서 인물은 더 뛰어나고 자연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촛불을 이용한 그림은 어둠을 더욱 확실한 고요 속에 머물게 하며 고요함속에 인간의 내면의 깊이를 전달받게 된다.(창에 찔린 성 토마는 조르주 드 라투르)

입체적으로 그려진 성토마스의 그림이 라투르의 자화상이다. 성 토마스는 인도에서 창에 찔려 순교한 성인이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않는다고 한 토마스 사도이다.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를 만져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데, 창은 로마병사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상처를 입혔고 토마스가 인도에서 창에 찔려 순교한 것으로 창은 그 상처를 의미를 가지고 있다.

토마스의 창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사실적 세밀하게 표현 되었으며 얼굴은 심오한 표정으로 고민이 가득하고 눈매가 날카로우면서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얼굴 뒤로 강하게 비춰지는 빛은 인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어깨로 내려오는 빛을 받은 의상은 단순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에 입이 벌어질 정도이며 겹쳐진 소매 끝자락이 마치 헝겊을 붙여놓은 것 보다 더 사실적으로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그림 같지 않은 책과 손가락과 손등의 주름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손등에 나타난 힘줄의 묘사는 손에 힘이 보일정도이다.

오른쪽에 들고 있는 창은 어떤가? 창을 들고 있는 손은 우리아버지의 손을 보는 것 같이 옆에 있으며, 날카로운 창은 쇠 냄새를 맡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화면의 인물은 매우 단순해 보이면서도 복잡한 느낌이 든다. 빛의 대가답게 빛에 의한 인물과 의상의 처리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격조 높은 부드러움을 가져다준다.

왜 라투르는 성 토마스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었는가? 아마도 예수께서 토마스를 무일푼으로 목수노비가 되어 인디아에 가게 했고 그곳에서 토착종교 제사장들에게 창에 찔려 죽었는데, 토마스의 의심 많은 것과 고집 센 사람으로 자신과 같은 성격으로 동일시하였는가, 아니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악행으로 잃어버린 민심을 용서라도 빌 듯 토마스의 죽음을 빌어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서양화가 베로니카 유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