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지오의 자화상 ②

그리스신화의 신들 중에 제일 신 제우스의 아들 디오니소스이다. 제우스의 넓적다리에서 태어난 바쿠스는 술의 신. 포도주의 신이며 쾌락과 축제의 상징인 바쿠스가 병든 모습으로 웃고 있다.

동그란 눈은 풀리고 피부색과 입술색이 푸르른 얼굴이 병색이 짙다. 카라바지오는 바쿠스를 좋아했나보다. 자신이 술을 좋아하다보니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동일시 했나? 그러나 몸은 근육으로 남성적이나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살며시 웃는 모습은 꼭 여인같이 나약해 보이는 것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빌기라도 하듯 여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병든 바쿠스(1593년)>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름답고 용감한 지혜로운 과부이다. 그럼 홀로페르네스는 아시리아의 장군이며 유디트가 사는 베툴리아를 포위했던 장군이다. 유티트가 적진에 잠입하여 아름다운모습으로 홀로페르네스가 만취한 틈을 타 장군의 목을 베어 유대인의 영웅이 되는 이야기 속에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이 카라바지오인 것이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598~1599)>

카라바지오는 어두운 바탕과 인물들이 빛에 의해 선명하고 역동적인 모습들이 음양의 대비가 확실하여 더욱 깊숙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유디트가 과부인데 작품 속 칼을 잡은 유디트는 앳된 소녀의 모습으로 두려움이 얼굴에 가득하다. 근육은 있으나 벌써 칼에 찔려 힘이 빠져 힘줄도 나오지도 않은 근육질팔뚝은 저항을 포기하고 칼로 베인 목에는 피가 흐르고 초점을 잃은 동공, 벌어진 입은 이미 죽어가고 있는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이 카라바지오의 자화상이다.

헤롯왕이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를 차지하려하자 세례요한이 옳지 않다고 하자 헤롯왕은 요한을 감옥에 가둔다. 어느 날 헤롯왕의 생일날 의붓딸 살로메가 그와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고 생일을 축하했고 그 댓가로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한 것이라 헤롯은 세례요한의 목을 베라 한다. 목이 베인 세례요한은 접시위에 올려져 살로메 앞으로 오는데, 카라바지오가 그린 그림의 살로메는 사형 집행인 앞에 쟁반을 들고 마치 금방이라도 받을 것 같은 자세로 구부리고 있다.

늙은 노인은 손가락으로 쟁반을 가르치고 네명의 시선은 세례요한을 보고 있다. 세례요한은 벌써 사령집행인에 의해 피를 흘리고 업드려 있고 한곳을 보고 있는 그림속의 인물들로 인해 관람자도 세례요한에게 머물게 하는데, 피를 흘리고 있는 세례요한의 얼굴이 카라바지오의 자화상이다. 카라바지오는 자신의 폭력적인 성격으로 악행을 일삼았던 행동들을 죽음으로 회유하나? 아니면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참회일까? <살로메 청에 의해 목이 잘린 세례요한(1608)>

나는 다윗의 얼굴을 보고 숨이 먹는 것 같았다. 아직도 어린 모습인데, 유년의 티를 벗지 않은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힘겹게 들고 있다. 카라바지오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사람은 성공한 만큼 오만과 방자함으로 자신을 망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카라바지오도 빠질 수 없다. 오만방자함이 끝내는 살인까지 가게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된다. 도망자로 살다가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 골리앗의 머리를 밴 다윗이다. <골리앗의 머리를 밴 다윗(1610년)생에 마지막작품.>

아마도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의 공포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의 메시지인가 싶다. 다윗에게 머리가 베어진 골리앗의 얼굴이 카라바지오다. 힘이 풀린 눈빛과 입안의 침과 흐르는 피, 너무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닥쳐올 자신의 모습을 짐작이라도 한 듯 허탈함과 참회의 빛의 골리앗이 바로 카라바지오의 자화상이다.

성서에 의하면 다윗은 선한 승리자이고 골리앗은 악한 패배자이다. 거인인 골리앗을 어린 미소년이 칼로 목을 베었다 그럴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그림은 그렇게 어린 다윗의 손에 거인 골리앗의 목이 베어 다윗에 손에 들려있다. 그러나 승리한 다윗의 얼굴이 승리자의 기쁨의 얼굴이 아니고 왠지 슬퍼 보인다.

죄를 뉘우치는 골리앗의 목을 벤 다윗의 슬픔. 아니면 골리앗은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면제부 시켜달라는 뜻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은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어졌나. 그동안의 죄를 인정하고 오만방자한 태도에서 과거의 용서를 구하는 태도로 이 그림을 그렸나 보다. 카라바지오의 광기어린 그림 속에서는 어쩌면 자신이 삶, 그 굴레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베로니카 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