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웅이고 싶습니다

0
18

오늘도 영화 한 편을 뚝딱했습니다. 전쟁 영화입니다.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인류 최악의 비극인 전쟁만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나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이종 격투기 관람을 좋아하고, 전쟁 영화를 즐겨 찾아봅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건 전우애의 모습을 통해 극한 상황에서도 결코 이기적이지만은 않은 인간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에서 보여준 우리 의료진의 생사를 건 희생의 봉사현장이 그래서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그 안에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핏빛으로 얼룩진 병사의 옷으로부터 묻어나는 화약 냄새가 살아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해줍니다. 이렇게 비일상적인 것들로부터 얻어지는 혼돈과 불확실함이 더욱 강한 영웅의 의지로 일상을 꿈꾸게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전쟁의 영웅들은 어떤 위대한 지도자나 사상가처럼 어떤 비범한 사람만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앞서 달려간 전우가 총에 맞아 쓰러져 신음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생명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오직 그 전우를 구하기 위해 총알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소영웅들이라는 데서 나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게 하는, 그런 영웅들입니다. 그래서 때론 이 지구상에 어떤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전쟁이 있다면 용병으로라도 참여하고픈 생각도 해봅니다.

나는 기독교 변증학의 원조격인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골(Kierkegaard)을 좋아합니다. 그가 말한 ‘기독교적 영웅주의’ 란 말에 매료되어 한동안 그의 세계를 탐닉한 적이 있습니다. 백년 후의 세계를 내다보고 말하는 기독교 사상가를 동시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 어 세기 이상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에서야 나 같은 사람의 희미한 안목에 그가 말한 바 있는 ‘기독교적 영웅주의’가 이제 겨우 신선한 깨달음으로 감이 잡히기 시작한 세기의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평범한 삶은 싫습니다. 뭔가 좀 비범한 영웅적 삶이 좋습니다. 어차피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사는 거라면 평범하게 살다 가는 것은 싫습니다. 영웅이 되고 싶은 겁니다. 그렇다고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등장하는 미스터 트롯 넘버원이 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러나 이 시대는 기독교 영웅을 필요로 하면서도 기독교 영웅의 탄생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모든 게 그렇고 그런, ‘원만한 관계의 이웃’ 으로 서로 탈없이 존재하고플 뿐입니다.

영웅은 시대를 본받지 않고, 자신이 처한 시대를 새롭게 바꾸어 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기에 역설적 진리가 담겨 있게 하고, 역행적 모험의 움직임들이 뒤따라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거기엔 아픔이 있습니다.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고통스러운 권태의 지루함이 있습니다. 손흥민이 손흥민일 수 있는 것은 그가 겪어온 매일 매일의 지루한 훈련과정을 인내하고 극복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기대하며 기다리면서도 막상 신세계의 문이 열리면 도전의 자리에서 물러나 슬그머니 꽁무니를 뺍니다. 변화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판에 박힌 일상의 삶이 지겨우면서도 그 익숙함 속에 꼭꼭 숨어 안주하므로서 스스로 고인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엔 그 어떤 생명의 신선함도, 그 어떤 기대감도 없이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 삶을 따르는 기독교 영웅이 된다는 것은 어떠한 삶의 형태이며, 얼마만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죄의 강물에 떠내려가면서도, 그 죄를 일상 속에서 먹고 마시면서도 우리는 그 죄와 아무런 갈등이나 싸움도 없이 아주 천연덕스럽게 킬킬거리며 사이좋게 공존하는 타협점을 찾기 위해 분주할 뿐입니다. 피터짐이 없습니다.

기독교가 의미하는 세상은 천국시민이 되기 위한 훈련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훈련장은 인기가 없기에 치료소인 병원만 짓습니다. 모두 환자인 듯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전쟁을 치르고 왔기에 그토록 치유가 필요할까요? 사실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한 거룩한 전쟁은 상처 그 자체가 영광이기에 예수의 십자가를 따르는 제자로서 훈장처럼 자랑스러워 할 ‘예수의 흔적’인 것입니다.

영웅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자신과 이웃에게 큰 소리로 외쳐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영웅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다가 죽어갔노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내가 존재함도 스스로 깨우치고 싶습니다.

비겁한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용기 있게 사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영웅은 아니 된다 할지라도 적어도 이쯤은 기본으로 살아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이라고 외치고 싶은 겁니다. 코로나19의 역병 태풍이 휘몰아친 후 일상의 삶을 다시 회복하려는 시점에서 ‘나는 영웅이고 싶다’고 말하는 나 자신은 아직 영웅이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임을 스스로 탄식하면서 말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수탉처럼 그렇게 동터오는 붉은 새벽하늘을 향해 길게 목을 빼고 소리를 지르고 싶습니다. 아직 나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아직까진 그래도 이 탁류를 헤쳐나갈 용기가 남아 있다고… 아닙니다! 용기는 커녕 첫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비겁함을 생각하며 긍휼히 여겨 달라고 그렇게 울며 기도할 것입니다.

조규남 칼럼위원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