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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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은 천국 못 갑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서는 천국 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일반적 의미로 꼰대는 어린아이와 정 반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겉사람은 물론 속사람도 늙고 추하고 고집스럽습니다. 그래서 미움 받고 은근히 따돌림 당합니다. 꼰대도 일종의 바이러스입니다. 사전적 의미의 ‘꼰대’는 더 재미있고 리얼합니다.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최근에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어원에 대해서는 영남 사투리인 ‘꼰데기’(뻔데기)와 백작이라는 프랑스어 ‘콩테(Comte)’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때 내가 좋아했었던 미국 영화배우 폴뉴먼이나 클린트이스트우드는 약간 신사고적 반항아 모습으로 스크린을 신선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폴뉴먼은 세상 떠난지 10년도 넘었고, 이제 클린트이스트우드는 90세 고령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이로 봐도 이미 꼰꼰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꼰대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영화배우로서 우리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꼰대는 나이로 따지는 겉사람 개념이 아닌 듯합니다.

세계를 주름잡는 G2의 두 지도자가 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입니다. 가장 막강한 세력의 영향력을 행세하며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데, 나는 세계 정치가 복잡한 원인 중의 하나가 이 두 사람의 리더십 문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국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세계 인류 평화를 위한 세계적 관점에서는 이들이야말로 꼰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김정은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1인 독재체제로 나라를 이끌고 있는 시진핑이 그렇고, 모든 정치 외교를 경제논리로 풀어가려는 트럼프가 그렇습니다.

기독교가 마지막 종말의 시대에 영적으로 잘 분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물질주의의 무신론과 자본주의의 유신론입니다. 이른바 무신론을 주창하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그 기반이 눈으로 보는 현상 위주의 물질에 있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양심과 도덕이나 윤리는 뒷전으로 하기 쉽습니다. 반면 기독교가 바탕이 되어 유신론을 앞세우는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어 자유와 풍요가 넘치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생산성과 효율성만으로 가치판단을 하여 과도한 경쟁력으로 내몰아치는 결과주의의 이 잘못된 풍요가 사람의 마음을 더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물질주의와 자본주의는 한 통 속이기에 그 결과는 같은 맥락으로 흘러 결국 인간성을 잃게 합니다.

미국 위주 서구의 자본주의 함정의 하나는 기독교의 신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번영과 성공의 목표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와 포장하므로 그들의 범죄는 은폐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십자군 전쟁이 그렇고,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삼아 부를 축적하는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축복이라 믿고 좋아하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사실 이들에겐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들처럼 부활이나 천국이 그토록 소망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이 땅 위에서 자기들만의 그 천국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꼰대가 되었습니다. 천국을 갈망하는 애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교회처럼 꼰대가 많은 곳도 없습니다. 신앙(信仰)과 신념(信念)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우러를(仰) 대상의 주님이 아닌 자신의 생각(念)에 집착하고 매달려 열심을 낼 때 아무도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도 못 말리십니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겨 상대를 자기 방식으로 끌고 가려는 잘못된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 꼰대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도 그리고 구원도 교회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조금 전 ‘꼰대 테스트’를 풀어 보았습니다. 감사하게도 20개항 질문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럼 그렇지. 난 절대 꼰대 아냐. 저런 구닥다리 노인네들과는 난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좋아라 하는데, 그 순간 번쩍 내 뒷통수를 강타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꼰대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네가 바로 꼰대다!”라는 벼락치는 내면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온전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가치 기준으로 천국문을 열 수는 있는 것입니까?! 변화하는 세상에 본질 아닌 본질, 소망 아닌 소망을 붙잡고 회개와 개혁 없는 천국을 꿈꾸고 있는 한 나도 별 수 없는 꼰대입니다.

조규남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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