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선생을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문입니다. 성경(마 7:13-14)에 그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왜 좁은 문이냐를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돼 있으니 그런가보다 하고 믿고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왜 좁은 문이어야 하느냐, 왜 크고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냐는 따질 것 없습니다. 크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도 생명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무조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리한 답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왜 부자되려 하는가? 좁은 문을 통과하는 힘든 과정을 피해 손쉽게 통과하는 크고 넓은 문의 세계를 맘껏 활개치고자 함입니다.

나는 매우 긍정적이며 무엇에도 묶이지 않는 아주 자유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진리로 붙들고 있는 성경만은 매우 제한적으로 받아들여 율법적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성경의 대부분을 알레고리칼한 영적 해석보다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기에 성경 내용에 불만이 없습니다. 불평불만은 회피하려 할 때 옹색한 변명거리가 튀어 나와서 갈등하며 힘든 것이지, 나처럼 곧이곧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여 순종하면 또 그런대로 자연스레 익숙해집니다.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십자가의 좁은 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천국영생의 문이라고 믿고 그 문을 통과하려는 그 순간부터 이미 그 문은 좁고 협착하여 고통으로 다가오는 문이 아니라 내게 묘한 설레임과 기대감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용솟음쳐 올라오는 기쁨이 있어 좁은 문을 통과하는 일이 결코 힘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 좁은 문의 영적 원리를 잘 알고 있는 나에게 행함에 앞서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 진정한 의미에서 내게 십자가이고, 내가 믿음으로 순종하여 들어가야 할 좁은 문이 어디에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난 솔직히 이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결하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달려 갈 길을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목적을 향해 갈 수 있고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나의 십자가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목회 시절에도 교회를 이끌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교회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교회는 항상 나의 기쁨이요 생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족이 나의 십자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천만에! 어찌 가족이 나를 힘겹게 옭아매는 무거운 십자가의 짐일 수 있겠습니까? 가족은 항상 나의 위로였고, 가정은 내 지친 몸을 쉬게 하는 따뜻한 보금자리의 안식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은 무엇인가? 오늘 새벽 묵상 중에 내게 번쩍하며 떠오르는 것은 P선생이었습니다. P선생이 나의 십자가이고 그리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달 11월21일 인천국제성모병원에서의 검진과 11월27일 일산백병원에서의 Parkinson’s disease(파킨슨 병) 진단 확정 이후 지금까지 뜻밖에 찾아온 이 손님으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오늘 새벽 새롭게 깨닫게 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P선생이었습니다. 파킨슨병의 이름을 지어낸 Parkinson씨는 이제 이 병의 선구자로서 나의 스승이 되어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세계의 비밀들을 알려 줄 것이며, 내 인생3막에서 새로운 인생 공부를 하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좁은 문은 통과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은 문입니다. 그러나 그 문으로 들어갈 때 더욱 안전하게 생명길로 인도됩니다. 우리의 영적 안전은 육적(물적) 안전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패역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등따십고 배부르면 딴 짓할 문이 더욱 활짝 열려 하나님과 멀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실제 그랬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신뢰할만 하지 않고 변수가 많습니다.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처럼 우리 역시 사탄으로부터 십자가로 시험받고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왕관으로 시험받고 유혹의 함정에 빠집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빈곤함에 이르게 하며 영적 위험 상태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C.S.Lewis의 명작, The Screwtape Letters(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이것을 잘 반증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물으시고 베드로의 긍정적 대답을 들으신 후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베드로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양들을 먹여야 할지를 예언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Henri Nouwen은 이 말씀에 빗대어 ‘성숙’이란 자신이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기꺼이 이끌려 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적 인물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육체의 가시에 대해 자신을 자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은 후 자신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며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날지 모르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P선생의 인도를 받아 내가 가고 싶지 않았던 좁은 문의 세계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는 P선생에게 꼼짝 없이 끌려다니며 십자가를 지신 주님처럼 멸시와 조롱 그리고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P선생은 이런 과정을 통해 나를 더욱 주님 앞으로 이끌고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게 하며 더욱 부활의 소망을 붙잡도록 하여 생명의 문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P선생은 나의 훈련교사입니다. 훈련 교사는 최종 승리에 이르기까지 제자를 훈련시킵니다. 그 훈련이 고되면 고될수록 더욱 강해져 승리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영적 원리로서, 십자가의 능력이며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끝까지 신뢰해야 하고, 자녀를 사랑하시는 그 선함과 인자하심을 믿고 따르는 길이 좁은 문입니다.”Everything God does is Love even when we do not understand Him.” – M. Basilea Schlink – , “Trusting that He will make all things right if I surrender to His will.” – Reinhold Niebuhr –

조규남 칼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