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0
12

시중에 떠도는 ‘구름 같은 인생’이란 트로트 가수의 노래가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구름 같은 내 인생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네 갈수록 멀어지는 나의꿈들 아~ 아~ 이것이 세상이란 말인가 어릴 때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야” 대충 이런 가사 내용입니다. 내 인생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그저 구름 흘러가듯이 바람부는 대로 흘러가는 인생을 아~ 아~ 하는 한숨 섞인 한탄과 함께 애절하게 노래하며 인생의 허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 노래처럼 천국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런 허무주의에 빠져 이런 허무의 늪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거리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더 허무한 것은 허무에서 탈출하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그 끝은 더욱 처절한 허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갈수록 멀어지는 나의 꿈들아” 하고 노래하는데,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어릴 때부터 꾸어왔던 그 꿈들이 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말이니까요. 어쩌면 그들이 꿈이라고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갈수록 멀어질 수밖에요.

진정한 꿈은 갈수록 멀어지는 게 아니라 가까워집니다. 예전에 희미했던 것들이 갈수록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불러 내 장례식 때는 이 찬송만 불러달라고 미리 부탁하기도 한 찬송가 490장 ‘주여 지난밤 내 꿈에’의 후렴 가사는 이렇게 끝납니다.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주님 얼굴을 뵙는 게 꿈이라고 고백하는 이 꿈이야말로 어쩌면 진정 이루어질 수 없는 꿈입니다. 이 꿈은 믿음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꿈이니까요.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닙니다. 이 꿈을 이루는 주체가 내가 아닌 주님이시기 때문에 능치 못할 일 없으신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자녀에게 약속하신 꿈을 절대 물리치지 않을 것을 믿는 믿음이 내게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꿈은, 진정한 믿음은 갈수록 멀어지는 게 아니라 가까워집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다 최종 목적지인 천국과 지옥 그리고 그 관문인 죽음의 문을 지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시점이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름 같이 떠돌다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게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허무한 인생들의 탄식이 곳곳에서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취업이 안 되고 일찍 은퇴하여 다음 단계의 삶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서만은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허무가 정신없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잃고 살아가는 데서 오는 허탈감 때문입니다. 허망하게 붙들고 있었던 허상의 구름들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넓디넓은 텅 빈 공간의 들판만이 자리잡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가을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내 서재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논들은 벌써 황금들판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고 어떤 곳은 이미 벼베기 추수를 끝낸 곳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날씨가 쾌청해 멀리 계양산의 첨탑이 보이고 가까이는 가좌천 뚝방길을 따라 제2자유로에서 아침 출근하기 위해 질주하는 차량들의 행렬이 보입니다. 갑자기 의문이 듭니다. 이리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을 향하여 무엇을 저리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저마다 이유가 있고 행선지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달려가는 궁극적 목적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모두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고향에 대해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라는 말도 틀렸습니다. 옛 친구들만 뿔뿔이 흩어진 게 아니라 이제는 눈에 보이는 고향집과 마을 입구에 들어 설 때의 포근한 풍경은 모두 사라지고 시멘트 아파트들만이 듬성 듬성 서 있을 뿐이니, 사람도 눈에 아련하던 고향의 옛 모습 옛 추억도 모두 어릴 때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라고 노래할 수밖에요.

인간은 흙으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지음받았기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 않고 본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생의 끝이 한 줌의 흙으로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 돌아갈 내 본향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 와서 쉬라. 내게 와서 내가 주는 시원한 생명의 생수를 값없이 거저 마시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따르는 자는 허무의 늪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소망의 힘을 얻고 살아날 것입니다. 지금은 방황하는 삶 가운데 예수 안에서 참된 소망을 갖고 참 본향을 찾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조규남 칼럼위원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