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만세(萬歲)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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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타고 있는 한 이 기차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대로 달릴 것이다”나도 이제 노인이라 부르는 나이가 되었다. 노인이면서 지난 3월부터 일주일에 두 번 노인요양원에 예배봉사로 80세 이상의 고령자 노인들을 가깝게 섬기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새롭게 깨닫고 있다. 노인들은 장애인과 더불어 사회적 약자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노약자이다. 보호가 필요한 노약자이기에 잘 대접해 드리고 잘 섬겨야 한다. 통제의 의미가 있는 ‘잘 다루려’ 하지 말고 공손히 ‘인격적으로 섬겨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노인들이 화를 내는 첫 번째 이유는 개인적인 인격적 대우가 아니라 무더기 대상으로 통제하며 다루려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물론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꼴통 짓을 하며 답답하게 굴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한다 생각하여 무더기로 싸잡아 값싸게 도매금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고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노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싸구려 도매금 취급을 당하는 것같아 싫은 것이다. 노인들이 품격 있는 인격적 대우를 바라는 건 골치아픈 꼴통 짓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할 노인의 몫이다.

노인들을 가까이서 관찰해보면 어떤 일관된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80이 넘은 노인들이라면 우선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자신의 무능력, 무기력을 스스로 인정하고 가능한대로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으려 애쓰며 꼭 필요한 것에만 쓸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정비해나간다. 그리고 당장 내게 필요치 않고 욕심에 그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순간부터 과감하게 있는 것들을 정리한다. 욕심을 내려놓기에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노인들의 잠든 얼굴을 보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여 때로 귀엽게까지 느낀다. 물론 더러는 자신의 소유에 집착이 강해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노인도 많다. 그 얼굴들은 스크루지의 고약한 얼굴처럼 욕심비늘이 다닥다닥 붙어 사람들이 피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착한 양처럼 온순하니 고분고분해진다. 그래서 때로 그 모습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날카로운 송곳니 이빨과 발톱이 다 빠져 힘을 잃은 늙은 호랑이처럼 기가 빠져 힘이 없는 노인들이 더 이상 어쩌겠는가…

노인들의 눈은 이제 반쯤 감겨진 상태로 사물을 보며 시야를 축소시킨다. 내가 보고 싶은 것, 꼭 보아야만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들만 본다. 시력이 가물거려 분별이 어려울 때는 아예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다 때로 망상에 빠져 헛소리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그동안 이 험한 세상에서 너무 많이 못 볼 것을 보고 살아온 징한 인생이니 이제쯤은 절반 눈을 감고 적당히 보고 싶은 것,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은 것이다. 이 나이의 노인들이 살아온 대한민국의 사회 역사는 이들에게 너무 참혹한 질곡의 세월들을 지나게 하였다. 사실 너무 많은 아픔들을 보고 느끼고 울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 노인들은 이기적이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더 인자하고 동정심이 많아 베푸는 이타적 삶의 노인들도 많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돌봐줄 사람들이 있는 노인들은 대부분 삶의 여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많다. 이기적 행태의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여생을 어떻게 아름답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이웃도 불쌍히 여길 줄 안다. 그러나 거의 본능적으로 노인이 되면 이기적이 되어가고 이해하려 든다면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전혀 경제적 여유도 없어 몸도 성치 않은데 그때그때 자신이 힘들게 한 끼의 식사를 챙겨 먹어야 하고 주위에 돌봐줄 연고도 없어 필경 고독사로 자신의 운명을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이로 인한 반동처럼 살아야겠다는 본능적 삶의 강한 집착으로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격적이 되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이제 노인들의 세상이 됐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시대에서 초고령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은 출퇴근 시간을 지난 보통 낮시간에 전철을 타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어떤 젊은이들은 불평한다. 그러나 멀쩡한 노인이 집안 구석에 처박혀 있다고 가정해보자. 행여 집에 다른 가족이 함께 있다면 노인 자신은 물론 그 가족 중의 한 사람도 참 곤욕스러울 것이다. 노인들이 일할 생각은 안 하고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노인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을 말한다. 그러나 노인들이 일 안 하고 놀고먹으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인들도 일하고 싶다. 그런데 청년 일자리도 없는데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더 없겠기에 이러고 다닐 뿐이다. 우리나라 복지제도가 참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되기에는 우선 국민의식부터 아직 멀었다. 다만 노숙자가 되어 사회문제의 대상이 안 된 것만 해도 스스로 다행이라 생각할 뿐이다.

모든 것을 통게 수치로 말하는 현대 사회는 숫적으로 우세한 것이 대세다. 이제 노인들이 대세가 되었다. 현재는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노인들이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 자신만을 돌보기에도 급급해서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지만, 이제 고학력의 노인들이 자신의 기본적 생활보장의 기반을 다진 후에는 자연히 사회문제로 눈을 돌려 정치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압력의 입김을 불어댈 것이다. 마치 노동자들이 연합하여 노조를 이루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듯 노인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연합하여 뜻을 모은다면 상당한 사회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간단하다. 노인을 노인으로 우대해주어야 한다. 경로우대증으로서만이 아니라 노인들의 자존감을 살릴 수 있는 인격적 대우 말이다. 그리고 노인은 자신의 사적 권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진정 나라와 교회를 위해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기차는 낡을대로 낡아 천정이며 그 모든 것이 너무 남루하고 시트도 손때가 묻어 때국이 질질 흐르는 낡을대로 낡은 기차이다. 그 낡은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도 개도 모두 낡고 늙었다. 그런데 모두 낡고 늙은 것뿐임에도 기차는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그래도 제 갈길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 기차의 종착지가 어디인지는 모르나 손님으로 달랑 타고 있는 늙은이와 늙은 개가 죽어버리는 그 시점이 이 기차의 종착역이 될 것이다. 손님이 없는 기차는 더 이상 운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이 타고 있는 한 이 기차는 낡은 모습 그대로 그리고 느려빠져 답답해 죽을 지경의 속도일지언정 운행을 계속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수많은 풍경이 스쳐 지나가고 계절의 변화가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바뀌어도 노인이 타고 있는 한 이 기차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대로 달릴 것이다. 그리고 노인은 계속 또 다른 노인으로 교체될 것이다. 기차가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조규남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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