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자화상은 삶이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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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불러오게 만든 화가 렘브란트. 그는 바로크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이며 유화, 동판화, 드로잉 작품과 자화상을 많이 그린, 네덜란드 화가로 방앗간집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공부에는 흥미가 없고 그림그리는 데만 열중하여 그의 부모는 야코프 판 스바넨뷔르흐 밑에서 3년간 미술공부를 시켰다.

그의 작품은 대상을 사실적 기법으로 쓴 다른 화가와는 다름이 없으나 빛의 효과에 있어 색채 및 명암의 대조를 강조함으로써 화가가 의도하는 회화의 효과를 거둔 화가이다. 때문에 렘브란트는 “근대적 명암의 시조”란 이름을 듣게 되었다. <렘브란트 ,22세 자화상, 1633년>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렘브란트의 젊은날의 초상으로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서 보이는 눈빛이 미묘하고 입술과 눈썹의 찡그림이 렘브란트의 장난기 어린 모습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열정과 살아 숨쉬는 것 같은 22세의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본 괴테는 자신의 젊은시절의 방황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는 생명이 없는 시신과 같으니 살아가지 않느니만 못하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후,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편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렘브란트가 가장 잘 나갔던 시절의 자화상이다.<렘브란트, 34세 자화상, 1640년>

암스테르담의 호화주택의 구입당시의 자화상으로 눈에는 자신감과 화가보다는 멋쟁이 신사에게 어울리는 멋진 옷과 화려한 모자, 약간 건방져 팔에는 위풍당당함이 흘러나오고 있다. 렘브란트의 주택은 암스테르담의 신흥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 위치한 그림같은 멋진집으로 당시 네덜란드 돈으로 1만 3,000길더. 지금으로 치면 우리 돈 13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실로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가 구입한 집은 지상 3층, 지하 1층의 대형 주택이었다. 이 시기 암스테르담의 평균 주택 가격이 1,200길더인 것으로 추정했을 때, 일반 주택의 열 배 이상을 초과하는 그야말로 초호화 주택이었다. 이때 렘브란트의 나이는 고작 33살이었다. 그는 이미 미술 시장의 스타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렘브란트, 63세 자화상, 1669년>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이다.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이제는 신용불량자가 된 렘브란트의 모습, 눈부신 성공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겪었던 역동적인 삶속에서 이제는 겸손과 자신을 안정적으로 체념한 모습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다. 단출한 외투에 꼭 다문입술과 모은 두손은 이제는 허용과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자신의 삶을 인정이라도 하듯 아무런 말이 없다.

63년의 100여점의 자화상을 남긴 화가는 렘브란트이외의 어떠한 화가도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화가가 있다면 빈센트 반 고흐라고 말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 또한 네덜란드 화가로서 짧고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화가이다.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는 내면의 세계가 내향적이면서 인간의 정신적인 갈등과 예술적인 자신의 편견이 강한 사람으로,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렘브란트의 강렬한 빛은 네덜란드의 화가 카라바지오의 영향으로 그와 같이 인물을 사실적 모티브로 인물의 표현이 규범적이고 고전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인물 그대로 그 자체가 강조되었고 명암의 극대비로 사물과 인물을 한층 부각시키고 명암, 질감으로 은근히 가라앉는 색채 속에서 광채를 찾아내고 고도의 유채기술의 숙달과 함께 그림 속에서 가식 없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인물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자화상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자화상은 삶이며 시간이다. 자신의 삶의 목격자로서 실천자로서 설계되어있지 않은 인간의 욕구대로 변화되어가는 삶속에 자신 스스로 만들어지는 대로 보여지고 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주어진 주제를 하나 더 회화작품으로 구성할 때 이야기의 설화적인 도식을 피하고 화가 자신이 그 장면의 목격자인양 리얼하고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삶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자신의 삶과 시대를 뛰어너머 개성을 발휘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미자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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